코드는 자산이 아니다 — 회계 장부가 말하는 AI 시대 개발자의 착각
지난 1년 동안 AI 코딩은 개발 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Cursor, Claude Code, Lovable 같은 도구를 이용하면 몇 줄의 자연어만으로 웹 서비스와 모바일 앱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유튜브와 커뮤니티에는 “개발을 몰라도 앱 만드는 법”, “10분 만에 SaaS 출시하기” 같은 콘텐츠가 넘쳐나고, AI 코딩을 가르치는 강사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 자체는 분명 놀랍습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IT 업계에서 여러 회사의 성장과 실패, 그리고 청산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한 가지 우려가 있습니다.
AI를 이용해 개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AI를 이용해 만든 서비스가 독립적인 산업을 만들거나 거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수익 모델은 AI 코딩 교육 시장인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것이 AI 코딩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AI가 개발자와 창업자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생산성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드는 자산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만이 자산입니다.
개발자들이 잘 모르는 회계와 세법의 현실
많은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든 코드가 회사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계와 세법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합니다.
회사가 직접 개발한 ERP, 그룹웨어, 플랫폼 같은 인하우스(In-house) 시스템은 자동으로 자산이 되지 않습니다.
회계기준(K-IFRS)은 다음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에만 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하도록 허용합니다.
- 기술적으로 완성 가능할 것
- 완성 후 사용할 의도가 있을 것
- 사용할 능력이 있을 것
- 미래 경제적 효익이 예상될 것
- 개발 완료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
- 개발 비용을 신뢰성 있게 측정할 수 있을 것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개발자의 인건비는 그해 비용으로 처리되고 손익계산서에서 사라집니다.
설령 무형자산으로 인식되더라도 끝이 아닙니다.
소프트웨어가 오픈되면 일반적으로 수년간 감가상각되며, 기대했던 경제적 효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손상차손(Impairment Loss)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 장부상 수십억 원으로 기록되어 있던 개발비가 몇 년 뒤 거의 가치가 없는 자산으로 정리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저는 20년 넘게 IT 업계에 있으면서 여러 시스템의 탄생과 죽음을 보았습니다.
수십억 원을 들여 만든 ERP와 플랫폼,
몇 년 동안 수십 명의 개발자가 투입된 서비스,
대형 SI 프로젝트의 결과물들.
하지만 회사가 청산되는 순간 그 코드를 사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인수자가 사는 것은 코드가 아니라,
- 고객
- 계약
- 데이터
- 운영 프로세스
- 현금 흐름
이었습니다.
개발자들이 흔히 외치는
“코드는 자산이다”
라는 말은 비즈니스 관점뿐 아니라 회계 장부 위에서도 상당 부분 성립하지 않습니다.
AI 시대의 성공 사례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AI를 적극 활용해 빠르게 성장한 서비스들은 이미 등장하고 있습니다.
Base44
이스라엘 개발자 Maor Shlomo는 AI를 적극 활용해 Base44를 개발했습니다.
서비스 출시 후 약 6개월 만에 약 25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2025년 6월에는 Wix가 Base44를 8천만 달러 현금으로 인수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Wix가 산 것이 소스코드 파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Base44는 이미 운영되고 있었고, 사용자가 존재했고, 매출이 발생하고 있었으며,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검증한 상태였습니다.
Lovable
AI 기반 앱 빌더인 Lovable 역시 매우 작은 조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Lovable의 경쟁력은 코드 생성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만들고,
배포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운영 데이터와 고객 경험입니다.
AI 코딩의 진짜 가치
AI는 코드를 대신 작성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불만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AI는 결제 시스템을 붙여줄 수는 있어도 고객이 왜 돈을 내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AI는 로그인 화면을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시장이 원하는 제품이 무엇인지는 대신 찾아주지 않습니다.
AI 코딩의 진짜 가치는 코드를 더 많이 생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AI 코딩의 진짜 가치는
시장 검증까지 걸리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주는 것
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디어 하나를 검증하기 위해 몇 달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며칠 안에도 운영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AI 시대 개발자들의 목표는 달라져야 한다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가능한 한 빨리 공개하십시오.
사용자가 한 명이라도 들어오게 하십시오.
누군가 실제로 돈을 내는지 확인하십시오.
반응이 없다면 미련 없이 버리고 다음 아이디어를 시도하십시오.
AI 시대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코드를 작성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운영 사이클을 돌렸는가
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AI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1년 뒤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만들어 본 프로젝트”
만 이야기하고 있고,
실제로 운영하며 수익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 우리는 AI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AI는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마법 지팡이가 아닙니다.
AI는 단지 더 빨리 만들고,
더 빨리 실패하고,
더 빨리 운영 단계에 도달하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결국 살아남는 것은 가장 많은 코드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가장 빨리 세상에 서비스를 던지고,
가장 오래 운영한 사람일 것입니다.
개발자들은 코드를 자산이라고 믿지만, 회계 장부는 대부분의 코드를 비용으로 처리합니다.
AI 시대에 희소한 것은 코드가 아니라 운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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